진실이 필요없는 사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적어도 한국은 더이상 진실이 필요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NLL 녹취록 사건도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NLL 파기 발언을 했는가?” 라는 최초의 문제제기에 대한 진실 여부는, 일단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상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실’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결과’와 관련없이 그 논란의 ‘과정’을 통해 민주당은 종북세력의 이미지가 강화되었고 사실상 판정패 당했다.
이석기 사태의 경우 그가 한 발언 내용에 대한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과연 국정원이 제기한대로 그것이 내란죄 성립 여부가 되는지라는 ‘진실’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의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 ‘진실’은 더이상 의미있을 것 같지 않다. 국정원도 ‘그 진실’에는 별 관십없을 수 있다. 내란죄 성립이라는 ‘결과’와 관련없이, 이미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국정원은 대선개입 의혹이라는 위기의 절정에서 벗어났고, 통합진보당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으며, 진보세력은 뇌사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채동욱 사건의 경우 아직 진행중이라 뭐라 말하기 힘들기는 하지만, 설사 그들이 취재윤리까지 어겨가며 제기한 그 (그들만의)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챙길 수 있는 이익은 이미 챙겼다. 사표가 아직 수리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간신이 그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많으며, 그렇게 된다면 진실에 대한 ‘결과’와 관련없이, 이미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될 것이다. 예측이 빗나가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뭐 정치라는 게 늘 그랬다고.. 역사를 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만약 이것이 보수세력의 철저한 계산 속에 이루어지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너무나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반대세력의 모습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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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아들들에게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가정적이신 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특별히 너무 무서우시거나, 무뚝뚝하시거나, 권위적이시거나 하신 것은 아니었지만, 한마디로 아버지와 함께 ‘논’ 기억이 별로 없어서였다. 아버지도 그 시대의 여느 아버지들처럼 회사일로 늘 바쁘셨고, 회사의 특성상 조금 늦게 출근하시고 늦게 퇴근하시느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해 불만이 있다거나 우리에게 무관심하시다고 생각한 적은 전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 반대의 생각을 갖기에는 물리적으로 함께 한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내가 그 때의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가고, 아버지처럼 (한국에서는 아니지만) 직장 생활을 하고, 그러면서 역시 아버지처럼 두 아들을 키우면서 옛날의 아버지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주 늦게 철들어 이제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버지는 너무나도 가정적인 분이셨고, 제한된 현실속에서 그 마음과 관심과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하셨다는 것이다.
그때는 무심하게 받아들였던 아버지의 행동들이, 이제 돌이켜보면그 현실에서 그러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희생과 수고를 하셔야 했으며, 그 희생과 수고를 감수하시고서라도 우리를 위해 그러한 일들을 하셨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중의 하나는 아버지의 엽서다. 아버지는 외국 출장이 참 잦으셨다. 많이 나가실때는 일년에도 몇번씩, 다 합치면 몇달씩 나가셨던 것 같다. 가셨던 지역도 참 다양해서, 아마 다 합치면 전 세계의 반 이상은 다녀보시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가 외국 출장을 나가시면 꼭 하셨던 것이 있었다. 우리에게 엽서를 보내시는 것이었다. 늘 그나라 엽서를 사셔서 나와 형에게 따로 보내셨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던 것 같다. 그곳 날씨가 어떻고, 어떤 사람을 만나셨고, 다시 오실때까지 잘 지내라는.. 아버지 특유의 또박또박한 글씨로 쓰신 아주 짧은 엽서였다. 그당시 나는 엽서를 (새것이든 쓰여진 것이든) 모으고 있었기에 (나중에는 1,000장 이상 모았던 것 같다) 사실 엽서의 뒤(편지내용)보다는 앞(사진)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늘 그렇게 날라왔던 엽서는 아버지의 부재 가운데에서도 아버지의 존재감을 늘 느끼게 해주었다.
아버지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학회일로 여행을 하다보니, 꼬박꼬박 엽서를 보내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도착해서 엽서를 사서, 바쁜 가운데 편지를 쓰고, 우표를 구해서 (그것도 국제 우편으로), 부치는 일은.. 그것도 처음 가보는 아주 낯설고 생소한 외국에서 한다는 것은 보통의 노력과 결단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조그만 엽서들이었고, 아주 짧은 글들이었지만, 그 몇 그램도 안되는 종이 속에는 비교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과 사랑이 있었음을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깨닫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흉내내보기로 했다. 비록 2박 3일의 짧은 일정인지라 엽서와 내가 같은 날에 집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 시카고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윤호, 민호, 그리고 아내를 위해 1장씩 엽서를 사서, 분주한 공항 한복판에서 엽서를 쓰고 부치는 일이.. 역시나 분주한 여행 중에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엽서를 쓰면서, 마치 몇십년전, 마찬가지로 어느 공항 한 구석에서, 혹은 호텔방에서 엽서를 쓰고 계셨을 아버지의 모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아버지께 돌려드려야 할 것을 자식들에게 돌려주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참 죄송하게만 보였다.
어렸을 때의 나의 모습처럼 엽서의 ‘뒤’보다는 ‘앞’에 관심을 보이는 윤호의 모습을 보며, 나도 이처럼 철없는 아이였지.. 생각을 한다. 아니, 부모님 앞에서 나는 앞으로도 늘 철없는 아이이겠지. 마음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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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세례

이번 주에 민호가 유아세례를 받는다. 40년 동안 장로교의 울타리에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유아세례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교회에서조차도 유아세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항상 굳이 정당화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면 그에 대한 신학적 취약성을 스스로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제발 바울이 간수의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는데 거기에는 아기가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는 안했으면 좋겠다. 그 논리대로라면 양과 염소에게도 세례를 베풀어야지. 차라리 이는 ‘세례’라기보다는 부모로서 아기를 믿음안에서 양육하겠다는 약속의 표현으로서의 의식으로 하자는 이야기는 약간의 설득력이라도 느껴진다. 물론 거기에 왜 ‘세례’라는 이름을 붙여야하냐는 질문은 남지만. 유아세례는 장로교에 있어 아킬레스건과 같은 부분이 아닐까 싶다.
윤호 때에는 유아세례에 대한 반항감도 심하고 다른 사정도 있어서 유아세례를 안 받으려고 했으나 또 이런저런 사정과 가족의 평화를 고려해서 받았다. 지금은 반항감을 표출하기에는 나이 때문인지(?) 피곤하기도 하고, 세상적 가치를 따른다는 의미에서 비성경적인 것이라면 거부하겠으나, 그런 맥락은 아니기에 그냥 받기로 했다. 단지 이를 계기로, 이 아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나기를 소망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참 된 예수의 제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지만, 말을 바꾸어 ‘심령이 가난하고 온유’해서 억울하게 당해도 복수하지 않고 슬픔을 삼키는 자로 자라기를, ‘의에 주리고 목 말라서 이를 위해 버림받고 소외되고 핍박받는’ 아이로 자라기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물고 뜯고 속이는 세상에서 ‘화평하게 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진.심.으.로. 소망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한국 돌잔치 문화에 배어있는 상향적 가치관과 ‘내 아이만은’ 문화가 싫어서 돌잔치를 거부하고, 윤호 민호 모두 ‘그런’ 돌잔치는 해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산상수훈에서 선포하신 그 하나님 나라의 원리 혹은 윤리를 ‘나’ 도 아닌 ‘내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솔직히 쉽지 않은 것 같다. 스스로에게 왜 돌잔치를 안 하냐고 물어봤을 때, 돌잡이에 판사봉, 청진기와 함께 빗자루와 걸레를 함께 놓을 자신이 있으면 하겠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돌잔치를 안 한 것은 자랑이라기보다 부끄러움이다.
어쨌든 민호가 유아세례를 받는다. 늘 하는 생각과 기도지만, 이 아이가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자라나기를 기도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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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혹은 ‘문화’로서의 기독교

한국에서도 나름 체계적으로 정기적으로 반복하여 시행하는 사회 여론조사들이 생겨났다. 그중에 한국종합사회조사(KGSS)는 비록 외국에서 하는 IPSS나 WVS/EVS 같은 것들을 카피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나마 한국인들의 생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읽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많이 발전된 데이타인 것 같다.
시간이 되면 한번 데이타를 봐야겠다 하던 참에 마침 작년 tmKOSTA에서 ‘민족과 이웃’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준비하면서 이 여론조사에서 재미있는 문항이 있어서 간단하게 데이타를 돌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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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에서의 질문은 다음의 각각의 외국인을 절친한 친구로 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1) 탈북자, 2) 조선족, 3) 미국인, 4) 유럽인, 5) 중국인(한족), 6) 일본인, 그리고 7) 동남아시아인. 예를 들어 ‘female’ 변수는 모두 음수인 계수를 갖고 있는데, 이는 여성일수록 이 질문에 대해 부정적인 대답, 즉 친구로 삼을 수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서구 국가들을 바탕으로 한 조사들의 일반적인 결과들과 일치하게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그리고 liberal 한 정치성향을 가질 수록 모든 외국인들에 대해 더 우호적인 태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왔던 것은 ‘기독교인’이라는 변수가 선택적으로만 일정한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즉 1)탈북자, 2) 조선족, 3) 미국인, 그리고 4) 유럽인에 대해서는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들보다 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5) 중국인(한족), 6) 일본인, 그리고 7) 동남아시아인에 대해서는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나의 데이타에 대해 아주 간단히 통계적 분석을 한 것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기독교인들이 ‘선택적으로’ 외국인들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것은, 그러한 태도가 종교적 ‘가치’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한국 사회내에서 기독교가 유지하고 있는 독특한 ‘문화’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공주의와 손을 잡아온 한국 기독교 역사는 자연스럽게 탈북자들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다소 폐쇄적이고 우파적인) 민족주의적 색채를 가져왔던 교회 내의 문화는 조선족들에 대한 태도를 형성했을 수 있겠다. 그리고 기독교의 친미 혹은 친서구주의는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에 대한 선택적 우호심을 가져왔을 수 있겠고. 그러나 한족 중국인들에 대해서는,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그리고 동남아시아인들에 대해서는 이들에 대해 우호적인 마음을 갖게 할 기독교내의 역사적 맥락도, 사상적 배경도, 문화적 바탕도 없는 것 같다.
기독교가 믿는 성경에서는 외국인들에 대해 특별히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정치/경제/사회적 지위는 불안정하고 약하므로) 그들을 보호하고 차별하지 말고 지켜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그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같은 땅에서 살아가는 외국인들을 바라볼 때 무엇보다 그들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첫번째일 것이고 여기에는 미국인도, 조선족 중국인도, 한족 중국인도 예외가 될 수는 없고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
반복하지만 대학원 통계I 수업 숙제로나 낼만한 간단한 regression 하나 갖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모든 차별과 불공정함을 지양하는 성경적 가치가 아닌, 역사의 소용돌이와 이념적 갈등 속에서 불균형적으로 형성된 한국 기독교 안의 독특한 문화가 기독교인들의 (외국인들에 대한) 마음과 태도를 더 지배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씁쓸하면서도 꺼림칙스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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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가을이다.
짧지만 그나마 있는 이틀 동안의 가을 방학 덕분에 오랜만에 감정의 사치를 한 번 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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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심과 가르치심

꽤 한동안 내가 가졌던 질문은 예수님은 왜 그리도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을까 하는 것이었다. 분명 고치시는 것은 그분의 3대 사역 중의 하나였다 (마4:23). 하지만 그의 고치심의 사역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들을 가져왔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몰려든 것이었다. 분명 사람들은 그분이 가르치시고 선포하시는 내용에도 놀라와 했지만 더 이상의 이해의 깊이로 내려간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반면 고치심에 대해서는 그분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몰려들었고, 그분은 본인의 사역이 그쪽으로만 몰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셔야만 했다. (c.f 막1장)
질문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왜 고치심이라는 사역을 하셨는가이고 둘째는 왜 그리도 ‘많이’ 하셨는가이다.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본인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는 표적(sign)으로서 하셨다는 것, 그리고 구약 예언의 성취라는 점, 그리고 이것이 영적인 회복과 평균케함, 그리고 질서의 전복의 상징이라는 해석 등에 동의하고 그리 어렵지 않게 스스로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가설들이 두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리 속 시원한 대답을 주지는 못했다. 결국, 너무 단순해서 허망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솔직하고 설득력있는 대답으로 찾은 것은 ‘그들이 불쌍해서’라는 것이었다. 몰려드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셔서, 너무 민망하셔서, 창자가 뒤틀리는듯한 ‘compassion’ 때문에 그들을 물리치실 수 없으셨던 그 분의 모습이 나에게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충분했던 것 같다.
요즘은 이 부분을 약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불쌍하셔서 잘 고쳐주시고, 그들에게 말씀도 선포하시고 하시는데 결국은 병 나았다고 좋아하고만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3년 동안 반복해서 바라보시는 그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병이 고쳐진 그 ‘현상’에만 만족하고, 그 현상 너머에 있는, 그리고 그 현상이 의미하고 상징하는 하나님 나라라는 큰 역사의 흐름과 하나님의 섭리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3년 동안 대하시면서 힘이 빠지시지는 않았을까? 그만 두고 싶지는 않으셨을까? 불쌍한 마음이 사라져서 고쳐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시지는 않았을까? 막 화가 나시지는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이를 이겨내셨을까? 이것 또한 그분이 인간의 약함을 입으신 분으로서 극복하셔야 할 부분이었을까???
신앙의 외형적인 것에 만족하려 하고, 개인적인 신앙의 영역에만 머무르려 하고, 기도의 내용과 말씀의 적용과 생각의 지경과 담론의 영역이 ‘나’와 ‘내 가족 – 그나마 부모/형제/자녀’를 넘어서지 못하는 오늘날의 교회와 청년들의 현실에서, ‘Kingdom of God in a holistic view’를 선포하는 것은 광야에 서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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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A 후기(4)

이번 KOSTA에서 참 인상깊었던 만남은 김회권 목사님과의 만남이었다. ‘만남’이라고 부르기에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은 아니었지만, 그 분이 KOSTA에서 지내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 되었던 것 같다.
사실 개인적으로 대면한 것은 jj에서 말씀을 전해주셨기 때문에 사전에 몇번 이메일을 나누었고, 또 jj 기간 동안 절차적인 이야기를 몇 가지 나누었고, 개인적으로는 한국에 친한 목사님이 계신데 지금의 사모님을 김회권 목사님이 소개해주셔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눈 것이 다였다. 미국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 좀 개인적인 관심을 보이신 것 같기는 하나, 그 분이 KOSTA에서 몇 명의 사람을 만났으며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을까 생각해보면, 사실 내가 목사님의 입장이라면 그냥 스쳐 지나가고 잊혀질 수 있는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KOSTA 기간 내내 지나가면서 뵈면서 인사를 나눌 때마다, 거기서 ‘형식적’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인가.. 한 KOSTA 간사님이 목사님께서 갖다주라고 하셨다면서 목사님께서 공저하신 책을 건네주었다. 지나가다 만나서 생각나서 주신 것도 아니라, 어쩌다가 생각나셨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챙겨주신 사실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저자로부터 직접 받을 때에 솔직히 가끔은 ‘홍보성’ 혹은 ‘과시’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번의 경우에는 배려과 돌봄, 기도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목사님에 대해서 다른 느낌을 받은 사람도 있었을테고, 또 알지 못하는 다른 면을 갖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만남 속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열정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구성하는 그 ‘백성들’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아픔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데, 목사님은 이러한 균형을 잘 갖추고 계신 분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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